[농업칼럼] 스마트농업, ‘첨단’의 환상 걷어내고 ‘사다리’부터 놓아라

획일적 고도화 정책이 부른 ‘디지털 미스매치’… 농가 눈높이 무시하면 경쟁력 요원

‘단순 제어’부터 ‘AI’까지… 기술 수용성 따른 ‘단계별 맞춤 지원’으로 정책 대전환해야

우리 농업의 스마트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고령화와 기후 위기라는 파고 앞에서 기술을 통한 혁신은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 중인 스마트농업 정책을 들여다보면, 방향키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현장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실적 채우기식의 ‘분절적 지원’만 쌓여가고 있어서다.


농가는 ‘극과 극’, 정책은 ‘일방통행’

가장 큰 문제는 정책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심각한 ‘눈높이 차이’다. 현장의 농민들은 두 부류로 극명하게 갈린다. 고령농을 포함한 일부는 복잡한 복합환경제어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비닐하우스를 여닫는 단순한 ‘편의성’을 원한다. 반면, 청년농과 선도 농가는 빅데이터와 AI(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활용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정밀 농업’을 갈망한다.

하지만 현재의 정책은 이러한 간극을 무시한 채, ‘스마트농업=고도화 패키지 보급’이라는 단일 도식에 갇혀 있다. 1단계가 필요한 농가에 3단계 장비를 떠안기거나, 고도화가 절실한 농가에 기초 장비만 지원하는 식의 ‘미스매치’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예산 낭비일 뿐만 아니라, 농민들로 하여금 스마트농업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게 만드는 주원인이다.

‘백화점식 보급’ 멈추고 ‘맞춤형 사다리’ 놓아야

지금 필요한 것은 획일적인 장비 보급이 아니라, 농가의 기술 수용 단계에 맞춘 ‘정밀한 사다리’를 놓는 일이다.

정책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단순 원격제어로 노동력을 절감하는 ‘입문형(1단계)’ ▲센서 데이터를 활용해 정밀 제어에 나서는 ‘도약형(2단계)’ ▲AI와 로봇을 결합해 최적의 생육 모델을 구현하는 ‘선도형(3단계)’으로 구분해 지원 체계를 세분화해야 한다. 각 단계에 맞는 장비와 교육, 컨설팅이 패키지로 제공될 때, 농민들은 비로소 기술을 자신의 무기로 삼을 수 있다.

기술은 도구일 뿐, 핵심은 ‘현장’이다

스마트농업은 단순히 비싼 기계를 들여놓는 것이 아니라, 농업의 구조 자체를 혁신하는 과정이다. 농가의 현실과 역량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정책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첨단’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한 계단씩 올라설 수 있도록 튼튼한 디딤돌을 놓아주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농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가장 빠른 길이다.

기고자 : 팜패스 대표 장유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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